소령원(昭寧園)은 조선 19대 숙종(재위 1674∼1720)의 후궁이며 21대 영조(재위 1724∼1776)의 어머니인 숙빈최씨의 무덤이다. 숙빈최씨는 숙종 44년(1718)에 49세로 죽었다.
효심이 지극했던 영조는 최씨의 무덤 근처에다 막을 짓고 무덤을 받들었으며, 친필 비(碑)와 비각을 4곳에 세웠다.
요즘 드라마에서 '동이'라고 하던데 이것은 드라마에서 부르기 쉽게 지은 호칭 인 것으로 알고있다. 숙빈 최씨라는 숙종의 5번째 부인이고 하층의 여인으로만... 아래 숙종의 계보도.
*숙종을 비롯해 주변의 여인들은 서오릉에 자리잡고 있는데(흔히 장희빈이라고 하는 희빈장씨의 묘에다 꽃을 놓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라는 속설로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묘가 있는지는 궁금했다. 오늘날이니 접근 할 수있지 옛날에는 심심산골이라서 호랑이라도.
한적한 파주군 광탄면 영장리에 있기에 찾기는 쉽지않다. 겨우 자동차 한대만 지날 수있는 오솔길이고 인적이 뜸해서 그래서 지도를 올린다.
우선 보광사를 찾거나, 장흥에서 고개넘어 지산저수지 쪽으로 가면 만날 수있다.
영조대왕의 효심과 소녕원 (昭寧園)
조선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장수했고(82세.1694-1776), 제일 오래 재위했던(52년.1724-1776) 영조대왕. 그에 걸맞게, 그의 치적이 세종 다음간다는 평과 함께, 영.정조시대가 문예부흥기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런 영조는 또한 모친에의 효심에 관한 한 버금 가라면 언짢아 할 왕일 것이다.
아버지는 숙종인데 어머니는 하층중의 최하층인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였기 때문에 영조는 무엇보다 신분 콤플렉스에 평생을 시달렸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모친를 극진하게 모셨을 것이다. 그의 모친 묘가 파주군 광탄면 영장리 고령산 (高嶺山)자락에 있는 소녕원 (昭寧園)이다.
숙빈 최씨에게는 비석이 세 개, 신도비(神道碑)가 하나, 육상궁이라는 사당이 하나 있다. 왕비가 되지 못한 탓에 일반 묘의 형식을 그대로 따랐다. 묘의 뒷부분에 제비초리가 있고 앞에는 비석이 있다. 왕릉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비석은 숙종 44년(1718년) 후궁 숙빈 최씨 사망시 `有明朝鮮國後宮淑//嬪首陽崔氏之墓’ 라고 두줄 세로로 써 세운 것이다. 여기서 有明朝鮮國은 명나라가 있으므로 조선이 있다는 뜻으로 대등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뒷면을 보면, 연호도 황명(皇明;황제의 나라 明) 숭정(崇禎) 을 쓰고 있다. 뒷면에는 해주 최씨, 정면에는 수양최씨라고 되어 있어 유심히 들여다 본 방문객들은 당연히 의심이 간다. 해주최씨 종친회에 알아보니 일부 사람들이 해주에 있는 수양산 이름을 따서 수양최씨라고도 했다고 한다.
영조가 왕위에 있으면서 친필의 비석 두개를 세우는데 정자각 우측 윗쪽에 각각 비각속에 들어 있다. 왕이 되자 마자 세운것에는 `淑嬪海州崔氏昭寧墓’라 쓰여 있다. 묘앞의 비와는 달리 해주 최씨로 명기되어있고 소녕이란 묘호가 붙고, 후궁이란 말과 함께 앞줄 전체와 지(之)자가 빠진다. 왕이 되고 난 후라 뭔가 조금 격상된 듯 싶다.
1725년 영조가 생모를 기리기 위해 궁정동에 사당을 만들어 숙빈묘(廟)라 한다. 1744년 이를 육상묘(毓祥廟)로 개칭한다. 육상궁(宮) (아들을 왕으로 등극시킨 조선 일곱후궁들의 위패를 이 곳으로 모으고 후에 칠궁이라 개명했다. 청와내 경내라서 최근에야 일반에 공개됐다.)으로 승격시키면서, 소녕묘(墓)도 소녕원(園)으로 한 단계 오른다. 영조가 왕이 되고 29년이 지난1753년의 일. 그 해 영조는 비석을 하나 만들어 또 다른 비각에 세운다. 비의 내용은 “朝鮮國// 和敬淑嬪昭寧園.” 명나라의 눈치를 안보아도 된다는 의미인지 이 비석에는 “有明”이라는 말이 없다. 그렇지만 뒤를 보면 연호는 아직도 “皇明 崇禎”을 그대로 쓰고 있다. 和敬이란 시호(諡號: 임금·정승·유현(儒賢) 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기리어 주는 이름)를 올리고 공식적으로 園이 됨을 알 수 있다.
영조는 어머니가 돌아 가시자 이곳에서 시묘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한다
현재는 들어갈 수없는 기간이라 철문밖에서 카메라로 찍었다.
한적한 산길이 조금은 두렵기도 한 오후였다.
영조의 친필이라고 한다.
이곳역시 전쟁의 흔적으로 탄흔의 자국이... 분단의 쓰라림과 언제까지 지혜롭지 못한 제형제 살육으로 우쭐대는 우매한 민족으로 살아야 할까?
이분들이 생존하실 때 비록 명나라의 그늘 이였지만 민족끼리 분단은 아이었는데!
소령원은 보호기간이라 원 안으로 접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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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원 앞 개울에는 자연이 만든 들풀들이 향기롭게 한여름의 자태를 자랑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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