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그 흔적들.. 국내/서울

원효봉 정상으로 가는길!

해뜨는 2013. 8. 20. 15:39

원효봉에 가는길에 바람이 시원하였다!

 

효자동입구에서 내린 뒤 바로 동네길로 접어들면 둘레길과 만나는 입구가 보인다.

 

서암문 또는 시구문이라고도 부른다한다.

조선조 숙종시절 도성과 지방의 골골에서 젊은 남정네들이 징집되어 이곳에서 성을 쌓다, 죽거나 병들면 이문을 통해서만 나갈 수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장비도 없는 300년전에 어떻게 이런작업들을 했을까? 생각하면 한걸음이 힘들지만 그 들보다 더 힘들겠는가?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우리의 성이나 지금은 이런형태이지만 원모습은 작고 허술한 돌담임을 알고 보면 도움이 될듯하다.

지금의 병사들 초소라고 생각되는 집터이다. 흔적은 없고 돌기둥만 보인다.

 

 

 

 

 

 

 

지금 보이는 돌들이 아마도 그때의 원모습을 보여준다.

정상에 오르니 백운대의 풍경이 가까이 웅장한 자태를 보이고있다.

 

계곡건너 보이는 의상봉인데 이곳에서는 의상대사가 다녔다고 한다.

옛성터와 오늘의 성터를 비교할 수있다.

 

 

 

 

 

 

북문에서 본다 이곳에서는 더이상 위험구간이라 올라갈 수없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보이는 길로 가면 송추로 가는 도로의 밤골이 나온다.

나는 뒷편의 길 북한산 계곡길을 택한다.

 

잘 정비되어 있는 도로가 편한마음을 가질 수있어 관리공단에 감사한 마음이다.

보리사 라는 절이다. 어디든 절을 보면 편한 마음이 든다. 믿음이 없으니 그냥 보고만 지난다.

 

 

 

1711년에 쌓았다는 북한산성이다. 사람들은 성을 보기만 하지 왜 쌓았는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백성의 버거운 생활은 쉽게 잊는다.

당시 청나라의 침략을 막기위해 이런성을 쌓았는데 결과는 한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고있다. 전전대에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에게 무릎끓은 비극을 막기위한

간절한 숙종의 생각이였을 것이다. 숙종은 지금 서오능에 있다.

이상을 쌓을 때 왕이 머물곳을 만들었다.  지금은 다시 복원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