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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 묘 여행

해뜨는 2017. 6. 27. 14:26

여름의 한 중간에 문산에서 10분 거리인 황희 정승의 묘를 찾아본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정승로88번길 23-83 주소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92 (지번)

파주시 탄현면 금송리 92번이다. 高麗의 선비이고 보니 당시의 수도였던 개성에 가까운 곳에 묻혔나 보다.

 

조선의 명재상이었던 황희정승은 청렴하고 깨끗한 성품과 함께 너그럽고 인자하기로도 널리 알려졌다.

영의정 황회와 그의 부인의 묘라고 적힌 듯 하다.

 

할아버지는 황균비(黃均庇)이고, 아버지는 자헌대부 판강릉대도호부사(資憲大夫判江陵大都護府使) 황군서(黃君瑞)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이다.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출생하였다. 대단히 큰 규모의 묘가 한적한 파주의 산아래 자리하고 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일정 기간 은둔생활을 하며 고려 유신으로 지냈다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였다는 설화가 전하지만 역사적 사실이었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 그러다가 1394년(태조 3) 태조의 적극적인 출사(出仕) 요청을 수용하여 성균관학관에 제수되면서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를 겸임하였다.

이후 직예문춘추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주차공간은 아주 충분하게 준비되어있다. 아마 미래는 이곳이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될 것이다.

 

웅장한 망부석이 2겹으로 설치된 대단한 규모이다. 더이상은 나의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다.

 

황희 정승의 어머니가 청상과부가 되어 홀로 오래 살았는데 어느 날 황희 정승이 조정에서 과부 개가 금지법을 정하고 퇴청했다고 하자 그 법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니 법을 고치라고 하였지만 황희 정승이 끝내 법을 고치지 못했다는...

 

신위를 모시는 사당인가 보다.

 

고고조선 초의 문신, 정치가.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재상. 영의정에 18년, 우의정 1년, 좌의정 5년까지 합치면 총 24년간 정승의 자리에 있었다
세종 시대라는 태평성대를 이끌었고 그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하여 백성들의 존경을 받기도 한 훌륭한 정치가이자 능력있는 공직자였지만,

반면 청탁 때문에 수차례 사직 권고를 받고, 뇌물을 좋아하는 등 도덕성에 흠이 있던 인물이라는 기록이 왕조실록에 기록되었다 한다.

 

 

추모관 오른쪽에 방명록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곳에 주소와 이름을 남기고 돌아왔다.

 

현대이건 왕조이건 너무 긴 권력의 늪에서 지냄은 꼭 좋은 일만은 아닌 듯 함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의 업적을 기록하는 신도비를 담아본다.

 

 

먼 곳에서 담아본 신도비 풍경

 

문산 장날 여행을 떠났는데 이곳에 머물고 간다. 역사는 지났지만 뒤돌아 보면 600년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교훈이기도 하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