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고려왕조 고종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 강화도는 고려의 한때 도읍지였다. 몽고의 난을 피하려 개성에서 물 건너 이곳으로 옮긴 건데
몽골족은 말을 타고 침략하는데 바다가 있으니 안전하다고 여겨 이곳 강화도 섬으로 도읍을 옮겼다.
백성은 멀리 팽개치고 무능했던 고려 왕조 고종이 1259년(고종 46) 6월 승하하자, 그 해 9월 기미일(己未日)에 이곳 홍릉에 장례지냈다.
2017.04.01일 강화도 국화리 홍릉을 찾았다. 하얀 제비꽃이 탐스럽게 피어난다.
이곳에 오니 내가 800년 전의 왕과 대화하고 그 시대의 삶을 느껴본다. 그는 아들을 몽고에 인질로 있었기에 보지도 못한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간다.
좁은 시골길을 자동차로 오르다 보면 주차장이 보인다.
엄마를 그리워 하는 시가 나무판에 새겨져 있다.
제례를 지내는 사당인 듯한데 아무런 표시가 없어 답답했다.
한적한 길을 걷는데 좌측 개울에 고라니 가족이 놀라서 언덕 너머로 도망한다. 아마도 물을 먹으려고 접근했었나 보다.
고종이 죽자 개경으로 옮기지 못하여 이곳에 뭍혔다는 설명이다.
고종 18년(1231)부터 여러 차례에 거친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국토는 초토화되고, 인명과 문화 유산의 손실 또한 매우 컸다.
어느시절에 비석은 깨지고 이어서 붙여진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고려 공종 홍릉이라고 암각으로 새겨져 있다.
고종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대장경을 만드는 등 문화상의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이 현재 합천 해인사에 남아있는 『고려대장경』이다.
문 무 석상이 단정히 서있다.
홍릉은 고려 23대 고종(1192∼1259)의 무덤이다.
이 당시는 정치적으로 최씨 집권시기였으며 밖으로는 거란·몽골의 침입 등으로 고통받았던 시기이다.
몽고의 난과 최씨의 집정으로 몹시 혼란에 빠진 무능한 고려 왕조 고종의 역사를 나에게 되새겨 본다.
이른 봄 봄맞이꽃은 다시 곱게 피어나건만...